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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올리와 성냥팔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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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브런치에서 작품의 재구성 이벤트가 있었는데 당시 참여했던 글입니다. 당연히? 떨어졌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이렇게 올려봅니다. 원문은 성냥팔이 소녀이고 그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연결되는 시간의 스토리를 써보았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검은 굴뚝이 있는 갈색 벽돌집들 사이로 지나가는 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올리. 이웃이 아무리 힘들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이기적인 청년이다. 이웃들은 그런 올리를 싫어하지만 올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청년 올리는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스물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날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 한쪽 구석에서 검은 목도리의 아저씨와 노란 옷의 아주머니, 금빛 긴 머리 여성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관심은 없었다.

“이 바쁜 출근길에 뭐 하는 거야. 멍청한 사람들 같으니.”

사람들 사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성냥들이 보였지만 올리는 시선을 돌리며 출근에 늦지 않기 위해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이브 날, 올리는 어둑어둑 해진 저녁에 하루 일당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녁에 내리는 흰 눈과 차가운 바람에 짜증이 난 올리와는 달리,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선물과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서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워진 날씨에 구시렁거리는 올리에게 한 소녀가 다가와 말했다.

“성냥 사셔요. 성냥 사주셔요.”

그 소녀는 흰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임에도 얇은 옷을 입고 신발을 잃어 맨발의 상태로 성냥을 팔고 있었다. 올리는 차갑게 말했다. “필요 없어." 올리는 소녀를 매몰차게 지나가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추워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실을 생각하며 화가 나 있던 올리였다.

“나 살기 바쁜데 크리스마스는 무슨!”

그때 성냥팔이 소녀의 외침을 들려왔다. “조심해요!” 달려오던 마차가 올리를 보지 못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던 것이다. 소녀의 외침을 들은 올리는 다행히 순간적으로 몸을 던져 다치지 않았다. 마차는 그대로 지나갔고 길가에는 소녀와 엎어져 있는 올리뿐이었다. 일어난 올리는 소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네가 나를 구해 주었어. 정말 고마워. 이름이 뭐니?” 소녀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안나예요.”

“정말 고마워 안나. 내가 성냥 한 갑을 사줄게.” 성냥을 사려는 올리에게 안나가 말했다. “성냥을 사주시는 것 대신 잠시 저를 따라와 줄 수 있어요?” 올리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안나를 따라갔다. 안나를 따라가던 중 올리는 안나의 맨발이 신경 쓰였다. '흰 눈 위를 걸으며 발이 시릴 텐데 신발은커녕 양말도 신지 않았구나.' 올리는 안나에게 처음으로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길 위의 간판 여러 개를 지나 도착한 어두운 골목 저 끝을 가리키며 안나가 말했다. “저기 골목 끝으로 저와 함께 가주셔요.”


골목 저 끝에 빛이 나는 곳으로 걸어간 올리 앞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집이 있었다. 빨간색, 갈색, 하얀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각각의 집은 연결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집들은 분위기가 달랐다. 멀뚱멀뚱 서있는 올리에게 안나는 성냥갑을 하나 주었다.

“앞에 있는 집에서 성냥을 하나씩 켜보셔요. 그것이 저에게 느끼는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충분해요.”

올리는 안나가 주는 성냥갑을 받아 첫 번째 빨간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내부를 밝히기 위해 올리는 안나가 준 성냥을 벽에 긁어 켜보았다. 올리의 손에 성냥이 환하게 타오르자 눈이 부실 정도의 빛과 함께 커다란 난로가 나타났다. 난로에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며 빨갛고 아롱거리는 불빛이 일었는데 그 따스함은 추운 눈바람에 얼어있는 올리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정말 따듯하구나.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몸을 녹여야겠다.” 올리가 난로에 가까이 가려고 손을 뻗는 순간 올리의 손에 있던 성냥은 꺼져버렸고 커다란 난로는 사라졌으며 차가운 공기와 함께 방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올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빨간 집의 입구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고 갈색 집으로 향했다.


갈색 집 내부 또한 어두웠고 올리는 빨간 집에서 했던 것처럼 성냥 하나를 벽에 그어 불을 밝혔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환한 빛과 함께 새하얀 식탁보로 쌓여있는 커다란 탁자가 나타났는데 탁자 위에는 노릇하게 잘 익은 커다란 거위구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그리고 새빨간 사과와 탐스러운 포도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얼마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는지 올리의 입에는 침이 고였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진수성찬을 두고 그냥 갈 순 없지. 사과 하나만이라도 먹어볼까?” 올리가 사과를 집어 베어 먹으려고 하는 순간 성냥불이 꺼졌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탁자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도 모두 사라졌으며 어둠과 함께 고요함만이 올리의 입안에 맴돌았다. 춥고 배가 고팠던 올리는 안나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 생각해 화가 났지만 남은 두 개의 집에도 들어가 보기 위해 다음 집으로 향했다.


하얀색 집 내부에 들어온 올리는 바로 성냥을 켜보았다. 성냥의 환한 빛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고 녹색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별과 알록달록한 장신구 그리고 무언가 들어있는 배부른 양말로 꾸며져 있었다. 캐럴을 따라 부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기 시작한 올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함을 느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하하 정말 신이 나는구나.”

크리스마스 트리에 있는 배부른 양말 속의 물건을 확인하려고 트리에 다가갔지만 곧 성냥불은 꺼지고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은 공허함으로 성냥불의 빛 속으로 사라졌다. “성냥이 더 있었다면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텐데. 검은 집을 확인하고 밖에 나가게 되면 안나에게 성냥을 더 달라고 해야겠어.” 하얀 집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올리는 마지막 검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집은 이전의 집들과는 다르게 더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올리는 마지막 남은 성냥을 벽에 그어 불을 밝혀보았다.

“칙”

성냥에 불이 붙었고 이전과 다르게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거 이상하군. 성냥에 문제가 있는 건가? 안나에게 가서 성냥을 다시 받아와야겠어.” 성냥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올리는 검은 집을 나가려 했는데 그 순간 저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올리는 검은 집이 아닌 아까 지나온 검은 골목의 끝에 있었다. 골목의 맞은편에는 갈색 머리의 작은 소녀가 성냥을 켜서 몸을 녹이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성냥으로 소녀의 몸을 다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소녀는 계속해서 성냥을 벽에 그어 불빛을 이어나갔다.

“저런 작은 성냥으로는 몸을 녹일 수 없어.”

올리는 소녀를 도와주기 위해 들고 있던 성냥을 바닥에 던지고 길고 검은 골목의 반대편 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와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소녀가 가지고 있던 성냥이 모두 타오르며 강한 빛을 밝혔을 때 하늘에서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떨어진 별이 사라질 즈음에 소녀의 성냥은 모두 타버려 꺼져갔고 올리가 바닥에 버렸던 성냥불 역시 꺼지면서 주변은 다시 어두워졌다. 올리의 앞에는 검은 집을 나가는 출입문이 있었고 올리의 헐떡이는 소리만이 집안에서 울릴 뿐이었다. 검은 집을 나선 올리 앞에는 안나가 있었다.

“그 소녀를 구하지 못했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소녀에게 다가갔더라면 소녀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올리에게 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울고 있는 올리를 안아주었고 올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안나의 품은 너무나 포근했고 이 세상의 따뜻함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 올리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올리는 집에 있었고 이미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모두 꿈이었던 건가?”

어제 겪었던 상황들이 모두 꿈이었다고 생각한 올리는 여느 때와 같이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출근을 하기 위해 파란색 작업복을 입었다. 스물여섯 번째 크리스마스 날 출근길,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던 그때 한쪽 구석에서 검은 목도리의 아저씨와 노란 옷의 아주머니, 금빛 긴 머리 여성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같은 장소이지 아마? 작년에는 그 이름이 뭐였더라. 안나였나? 그 소녀도 성냥을 팔다가 변을 당했지. 에휴 불쌍한 아이들.” “우리가 너무 무심했어요.”

슬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올리는 길의 맞은편에서 양말을 팔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했다.

“네가 팔고 있는 모든 양말을 내가 살게. 추운데 어서 집으로 들어가서 쉬거라. 메리 크리스마스.”

 올리의 말에 놀란 소녀는 곧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올리에게 대답했다.

“정말 감사해요 아저씨. 아저씨도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해하는 소녀를 뒤로하고 올리는 방금 산 양말을 가지고 출근길의 반대편에 있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하얗게 맑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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